오랫만에 참으로 오랫만에 지리산으로 향했다.
2009.5.26. 7:30분 남부터미날에서 구례행 버스에 올랐다.
28인승의 우승버스에 승객이라곤 달랑 4명 뿐. 3시간 40분을 달려 구례터미날 도착,
그리고 화엄사행 시내버스... 12시 40분부터 오랫만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화엄사 일주문에서 2km쯤 걸으니 화엄사가 나타난다.
국보 67호인 각황전에는 3일전 홀연히 떠나버린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가슴 먹먹하고 목이 메었다. 재임중 말은 많았지만, 퇴임후의 모습은 너무도 인간적이지 않았던가.
지리산에 와서라도 마음좀 달랬으면 견딜 수 있었을 걸....안타깝다. 치사한 더럽도록 치사한....
7km의 화엄사 계곡. 얼마전 비가 온 덕분에 계곡이 살아 움직이는듯 하다.
계속 오르막인 화엄사 계곡길을 3시간 넘게 걷다보니 어느새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했다.
오늘 밤은 여기서 푹~~
새벽에 노고단대피소를 나섰다. 돼지령과 임걸령을 지나면서 바라보이는 능선이 장쾌하다
왕시루봉 아랫쪽 섬진강 주변에는 운무 가득하고.
1,732m 반야봉. 지리8경중 반야낙조가 일품이라는데 매번 아침에 도착한다.
mp3를 꺼냈다. 지리산에 가면 곡 듣고 싶었던 노래를 찾았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 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은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시 : 이원규, 노래 : 안치환)
전북 전남 경남 3도가 접한다는 삼도봉을 지나고....
토끼봉을 지나 연하천으로 향한다. 겹겹이 싸인 능선넘어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연하천과 벽소령 산장을 지나 선비샘에 도착. 목을 적시고 시원하게 세수까지 했다.
옛날 상덕평에 평생 가난하고 천대받던 노인이 죽으면서 이곳에 무덤을 만들라고 유언을 했다는데,
그후 사람들이 선비셈에서 물을 뜰때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니 죽어서 사람대접 받게 되었다는 전설이 서린 곳.
오후 4시경 약 20km을 걸어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평전인데 철쭉꽃이 많지 않았다.
머리 감고 땀흘린 몸도 대충 씻고 저녁을 해먹었다. 주변에 삼겹살 냄새 진동하고....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세석산장 출발. 전날 7시쯤 잠자리에 들었으니 더 잘 수도 없었다.
장터목산장에는 학생들이 단체로 머물렀는지 새벽부터 시끌벅쩍했다.
남은 밥으로 죽을 만들어 배를 단단히 채우고 천왕봉을 향해 출발.
제석봉의 고사목은 여전한데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듯 하다. 도벌을 은폐하려고 불을 질러 고사목이 생겼다는데...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 통천문을 지나 아! 마침내 1,950m 천왕봉 정상.
천왕봉 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 3명의 아줌마 산꾼이 올라오기에 사진을 부탁했다.
그들이 반갑다며 악수를 청한다. 그간 잘 있었느냐고 바위도 쓰다듬는다.
부산에서 온 학교선생이라 했다. 학교 안가고 왜 여기 왔냐 물으니 땡땡이 쳤단다.
지리산처럼 여유가 있어 재밋다.
지리산 주능선 25km를 걸어 마침내 천왕봉에 섰다.
아!, 얼마만인가~ 바위,나무,흙,바람등, 산의 모든 것들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나만 변한듯 하다.
정상에서 20여분 머물고 나서 다시 배낭을 챙겼다.
이제 내려 가야지....올랐으면 내려가는 것이 산과 인생의 이치 아니겠는가....
대원사쪽 하산길에 있는 무재치기폭포, 비록 수량은 적지만 일품이다.
지리산종주는 화엄사로 들어가 대원사로 나오는게 정통코스로 약 50km의 주행거리다.
과거에는 성삼재에서 시작하는 편한 코스만 걸었으니 이제야 체면이 선다.
천왕봉에서 대원사로 하산길은 6시간이나 걸렸다. 중간에 치밭목 산장에서 아침을 먹느라 좀 쉬긴 했지만.
마침내 2박3일 지리산 화대종주의 종점인 대원사에 도착했다. 비구니절답게 깨끗했다.
부처님께 간단히 기도했다.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시원스런 대원사계곡 길옆으로 이런 팻말이 보였다
"도시에서는 FAST, 산에서는 SLOW"
버스타는 곳은 대원사에서도 3.5km 아랫쪽에 있었다.
서울행 버스표를 사는데 젊은 아낙이 더 필요하게 없느냐고 묻는다.
졸려 낮잠을 자려고 한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넓은 대원사 주차장에 나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마시는 맥주맛이 시원했다.
그래, 때가 되면 버스도 오겠지....
'여행이야기-국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올레9~10코스 (0) | 2012.06.12 |
---|---|
청산도,나로도,증도... (0) | 2011.07.02 |
섬 그리고 산. (0) | 2009.05.05 |
화암사 (0) | 2009.05.05 |
제주올레 1~8코스 (0) | 2009.04.17 |